Tae Yeun Kim

오선영

[전 아트선재 큐레이터]

Of  Memories, Real or Imagined

혼자 무언가를 머리 속에 그려가며 상상하기를 즐겨 하는 사람들을 보면 ‘순수하다,’ ‘해맑다,’ ‘익살스럽다,’ ‘엉뚱하다,’ ‘천진난만하다’ 등 그 모습에서 연상되는 단어들이 있다. 작가 김태연의 모습이 그러하다. 김태연의 작업은 그녀의 모습과도 같이 밝고 경쾌한 색상들과 단순한 이미지로 보인다. 밝고 경쾌한 색상들에 의해서일까, 그리기 방식 때문일까, 그녀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들은 무척이나 친근하게 다가오면서도 이미지의 형태나 패턴에서 읽혀지는 그녀의 생각들은 복잡하고, 낯설다. 그리고, 그 낯섦 때문일까 관람자들은 작가 김태연에게 자신의 작품들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재확인하게 된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자신의 주변에 존재하고, 반응하는 모든 것들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바라보고, 느껴지는 생각들을 작업에 반영한다. 그렇듯이 김태연은 관계되고, 반응하는 모든 것들을 보면서 벌어지지 않은, 있을법한 모든 가능성들을 상상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녀가 상상하는 것들은 막연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상상이며, 그 상상은 구체적인 실재로부터 시작된다.

기억 속 이미지 단순화 시키기

김태연의 초기 작업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은 단순화된 형태를 띤다. ‘Kissing the Dog,’ ‘Clean up after the use,’ 그리고 ‘Urinals’ 등과 같은 2001년 작업들을 보면, 김태연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건과 사물의 형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김태연은 작품을 통해 그녀가 주목하는 특정 상황에 대해 설명하거나, 이야기 하려 하지 않는다. 작품의 제목을 통해 어떤 기억의 장면인지 알아챌 수는 있지만, 굳이 작품 제목 없이도 명쾌하게 스스로 독립된 이미지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작업들이 단순하게 이미지로만 보여지는 것과 같이 보이지만, 이후 작업들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초기작업들은 내가 현재 작업하는 작업들의 시작점으로, 나의 모든 작업의 기초가 되는 단순화된 이미지들이다”.

–작가노트발췌

‘Control of memory’(2004)는 ‘Amorphous’(2002)에 등장하는 하나의 세포 이미지를 반복시킨 패턴으로 변형한 작업이다. 가로 8미터, 세로 3미터 너비의 커다란 벽면에 세포 이미지로 꽉 채워 놓은 이 작업은 밝은 색의 변형된 세포 패턴들이 꽉 채워진 벽면을 통해 어두운 공간을 밝게 전복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시간에 대한 기억을 단순화된 이미지로 기억하려는 그녀의 반복적인 행위로 기억된 하나의 이미지를 반복된 패턴으로 그려간다. 형태화된 기억의 이미지를 다시 현실에서 재구성하여 또 다른 새로운 이미지로 보이게 된다. 이것은 김태연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에 대한 기억들을 밝고, 친근한 이미지로 바꾸어 두려움과 공포감을 없애려는 작가의 또 다른 방식의 제스처다.

존재감에 대한 인식 그리고, 두려움

김태연의 작업은 관객들에게 단순한 이미지만을 전달하지 않는다. 그녀는 과거의 경험에서 얻은 두려움과 공포에 대한 기억들을 이미지로 형상화 시키고, 그 어두운 기억으로부터 자신(혹은 약자)을 강하게 보호하기 위해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무장시키고, 밝고, 따뜻한 이미지로 바꿔버린다.

김태연은 생물의 세포와 같은 구체적인 대상의 세부이미지들을 확대하여 작업하기 시작한다. 2002년에 접어들면서 그 형태들은 무한 증식되어지기도 하고, 축소된 실제 형태를 단순화된 이미지로 만들기 시작한다. 이런 작업들이 Keeper 시리즈에서 본격적으로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그 전 2004년도에 평면으로만 보였던 이미지들을 설치작업으로 공간을 채우는 작업을 하게 된다. 2008년부터는 단순화시켰던 이미지들을 서로 조합하기도 하고, 분해하기도 하면서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김태연이 이전 작업들을 통해 과거 속의 한 장면의 일부를 평면화 시켜 보였다면, Keeper 시리즈들에서는 그녀의 상상 속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마치 판타지 공상 만화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지만, 그 안에는 그녀가 갖고 있는 두려움과 어둠이 감춰져 있다. 세포들과 같이 생물 속에 공존하는 수 많은 것들이 함께 존재하고, 움직여 주지 않으면, 그 생물은 생명을 가질 수 없다. 이처럼 김태연은 인간은 스스로 존재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그녀의 그런 생각들을 통해 몸에 온갖 촉수를 가지고 세상 밖을 향해있는 의인화된 생명체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 존재는 외부세계에서 자신을 완강하게 보호하고 보존하며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작가의 희망을 담고 있다. 의인화된 생명체를 감싸고 있는 것은 나무나 인삼, 상상 속에 등장하는 식물, 곤충 그리고, 갑각류들이다. 온 몸을 휘감고 있는 다양한 수호적 의미의 상징물들은 따뜻하고, 훈훈한 색조와 모나지 않고 둥근 형태를 하고 있다. 이 생명체는 너무 잘 보호되고 있어, 두려움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위기감의 심리가 드러나기 보다는 수호적 의미의 상징물들로부터 너무 잘 보호를 받고 있는 행복한 존재로 느껴진다.

김태연은 2009년 Collision 시리즈를 통해 이전 작업들에서 느껴지지 않았던 좀 더 성숙된 사고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Collision 시리즈에서는 약함과 강함, 부드러움과 딱딱함, 질서와 무질서, 개인과 집단 등 서로 대립되는 관계들을 포착하기 시작한다. 김태연은 이 관계들 속에서 미세한 반응과 그에 따른 파장을 좀 더 의식적으로 느끼고 감지하게 되는데, 그 파장은 강한 충돌이 될 수도 있고, 결국 기름과 물이 분리되는 것처럼 보여 질 수도 있고, 그것들이(다양한 색깔) 섞여서 결국 아무 색도 발하지 못하고, 검은색으로 되어버리는 허무함을 나타내기도 한다.

버려진 공간에 생명력 불어 넣기

2008년 문래동 철공소 단지 내에 위치한 건물 내부에서 보였던 작업은 장소 특정적인(Site-Specific) 작업이었다. 문래동 철공소 단지는 이미 재개발되어버린 높은 아파트들과 건물들로 둘러 쌓여 있다. 아직 재개발되지 않은 채 존재하고 있는 공장단지 건물은 값싼 임대료로 많은 예술가들에게 기생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김태연의 작업은 문래동 공장단지 안 한 건물에 있는 작가의 작업실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과 옥상으로 연결되는 통로 벽면에 설치되었다. 물구나무 선 사람의 모습의 몸은 나무와도 같다. 그리고, 몸은 높은 건물의 모양을 하고 불안정하게 물구나무선 채로 걸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미생물형태의 물체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무질서하게, 무계획적으로 정신 없이 재개발되고 있는 현실과 그 사이 갈 곳을 찾아 나서는 힘 없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유한 것이다. 힘없는 미생물형태의 이미지들은 마치 문래동 공장 단지 안에 기생해서 살아가고 있는 작가들의 모습을 비유한 듯 애처롭지만, 마지막 희망을 담고 있는 듯 보는 이들에게는 흐뭇한 웃음을 준다.

현대미술에서 ‘추상’은 너무 흔한 것이 되어버려 주목을 받기에 어려움이 따르기도 한다. 하지만, ‘추상’이 실제에 근거하여 작가의 구체적인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로 사용되어진다면 흥미로운 일임은 확실 할 것이다. 김태연의 작업의 시작은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와 경험에서 시작되지만,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성적, 감각적 발상에서부터 오는 것이기에 낯설지 않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김태연의 작업은 점점 그 공감대의 폭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사적인 경험의 이야기에서부터 주변을 돌아보며 다른 이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찾아가고,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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